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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년 전 FC 알레마니아로 창단된 FC 아우크스부르크 – 일곱 명의 젊은이로부터 시작된 역사

클럽 08.08.2017, 15:47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10년 전 8 8 화요일에 FC 아우크스부르크의 전신인 FC 알레마니아가 창단되었습니다. 축구팀이 흔치 않았던 시절 몇몇 젊은이들이 모여 하나의 팀을 만들었고 오늘날 우리 구단 성공신화의 초석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지금의 아우크스부르크 Langemarck-, Sommestraße와 서부 공동묘지를 아우르는 지역에는 커다란 연병장이 있었고 그곳에서 일곱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공을 차기 시작했습니다. 세기 변환기였던 그때 당시 독일에서 축구는 완전히 걸음마 단계였습니다. 많은 체육협회들에게 이 새로운 취미 거리는 생소하게 느껴졌고, 그 이유로 많은 소속 축구 분과들이 매우 산발적으로 창설되었습니다. 그해 시간이 흐르며 지금 Reinöhlstraße 근처의 잔디밭에는 차츰 점점 더 많은 열성적인 축구 선수들이 모여들게 되었고 이들은 장차 대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원했습니다. 이렇게 1907년 8월 8일, 아우크스부르크 평화 축전의 날 오버하우젠 "Schwäbischen Hof"에서 "FC 알레마니아"가 탄생하였습니다. 프리츠 케펄라인씨가 회장을 맡았고, 이어서 정식으로 구단 등록을 마쳤습니다. 구단 창립 초기에는 30여 명의 회원이 여전히 오버하우젠 역 철로 둑 근처 커다란 연병장에서 하얀색 상의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축구를 즐겼습니다. 규칙적인 리그 시합 참가가 힘든 초기 상황에서 시합은 자체 경기로 제한 되었습니다. 당시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선수들이었지만 기꺼이 회비 30페니를 부담하며 필요한 장비들을 샀습니다. 선수들은 경기하기 전 직접 골대를 세웠고 경기가 끝난 후 오버하우젠 역에 사용한 장비들을 보관했습니다. FC 알레마니아의 쓰라린 패배들 아직 축구가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전에도 아우크스부르크와 그 주변 지역에서 적게나마 시합 상대가 있었고, 1907년 10월 20일 TV 아우크스부르크 2군 팀과 첫 시합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경기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역사적인 첫 경기에 참여한 선수들의 이름은 아직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막스 프리쉬, 헤어만, 후고 바그너, 알로이스 쿤, 마틴 말러, 안톤 비데만, 안톤 린더, 클레멘스 하트만, 요셉 카이델, 로만 바더 그리고 오토 란트가 그들입니다. 그리고 당시 강력한 전력을 자랑했던 MTV 아우크스부르크와 같은 팀들과도 초기 경기를 치렀는데 아직 이어져 내려오는 소수의 기록을 보더라도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MTV 1군과의 경기에서는 0:25이라는 엄청난 대패를 당하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이 같은 경기를 통해 한 수 배운 아우크스부르크 선수들은 결과에 낙담하지 않았고 자신이 속한 구단에 대한 신의를 지켰습니다. 이후 많은 수의 다른 팀들과의 합병이 있었고 경기장도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110년이 지난 후 흔들리지 않는 사실이 있습니다: FC 알레마니아 창설회원들이 7번 연속으로 분데스리가에 참가하며 심지어 지금까지 구단 역사상 가장 큰 성공 사례로 꼽히는 2015/2016 시즌 유로파 리그를 경험한 오늘날 FC 아우크스부르크의 초석을 다졌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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